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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자 증세가 실제로 시행되는 나라들과 그 반응

by 가치의 지도 2025. 7. 11.

‘부자 증세’는 언제나 대중의 관심을 끄는 주제입니다.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그 재원을 바탕으로 복지 확대나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정책은 많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조세 시스템’으로 지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정책이 시행될 때, 현실적인 저항, 자산 유출, 투자 위축 등 예상치 못한 복합적인 반응이 따라옵니다. 단순히 구호로만 존재하는 ‘부자 증세’와, 실제로 제도화되어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매우 다릅니다.

부자 증세가 실제로 시행되는 나라들과 그 반응
부자 증세가 실제로 시행되는 나라들과 그 반응

현재 부자 증세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나라들—프랑스,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미국 일부 주 등—은 각기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고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세금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는 자본소득세를 강화했고, 어떤 국가는 순자산세를 신설했으며, 어떤 국가는 유산세의 범위를 넓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반응 역시 다양합니다. 일부 부자들은 세금 강화를 ‘사회적 책임’으로 수용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거주지를 옮기는 식의 회피 전략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부자 증세가 실제로 시행된 주요 국가들의 정책 사례와, 각국 부유층 및 시민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프랑스의 부유세(Worth Tax) 도입과 철회: 정의로운 조세냐, 자본 탈출이냐?

프랑스는 부자 증세의 대표적 실험 국가로 자주 언급됩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시행된 'ISF(Impôt de Solidarité sur la Fortune)', 즉 부의 연대세는 순자산이 일정 금액을 넘는 고액 자산가에게 매년 자산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게 한 제도입니다. 이 세금은 금융 자산뿐 아니라 부동산, 예술품 등 거의 모든 자산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세목 구조를 가졌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복지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시행 후 몇 년 사이 고액 자산가들이 대거 해외로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벨기에, 스위스, 모나코 등 인근 국가로의 자산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세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했죠. 프랑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 해에만 수천 명의 고자산자가 국적을 포기하거나 세금 회피 목적의 이주를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결과는 단순한 조세 회피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경제 전반의 투자 위축, 고용 감소로까지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기업가들이 프랑스를 떠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도 타격을 입었고, 자본 시장의 유동성이 낮아졌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결국 2017년 마크롱 정부는 ISF를 폐지하고, 대신 부동산에 한정된 세금(IFIs)으로 축소 전환합니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성공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프랑스의 경쟁력을 해치는 행위”라며 정책 철회의 명분을 밝혔습니다.

 

프랑스의 사례는 부자 증세가 정치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어도, 경제적으로는 섬세한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임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동시에 고소득층과 고자산층이 세금을 피해 떠날 수 있는 시대에, 단일 국가 단위의 증세 정책이 가지는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셈이기도 합니다.

 

2. 아르헨티나의 코로나 특별 자산세: 위기 속 급진적 실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경제적 충격을 받는 가운데, 아르헨티나는 한 가지 급진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부자세(Impuesto a la riqueza)’라는 이름의 일회성 특별 자산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는 팬데믹 대응을 위한 의료 재원 확보와 소득 재분배를 목적으로 시행된 정책으로, 순자산 2백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약 1만 2천 명의 고자산가가 과세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율은 자산 규모에 따라 차등 부과되었으며, 최고 세율은 약 3.5%에 달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세금을 통해 약 30억 달러 이상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시행 직후부터 부유층의 강한 반발, 법적 소송, 해외 자산 은닉 등 강력한 회피 전략이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가,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 고소득층의 공개적인 반대와 자산 해외 이전이 이슈화되면서, 국내 여론도 둘로 갈렸습니다. 일부는 "국가 위기 시기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찬성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왜 부유층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또한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세금 정책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해친다는 인식이 퍼지며,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고 환율이 불안정해지는 등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일부 투자 분석가들은 이러한 급진적 조세 정책이 단기적 재원 확보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기피 국가로 전락할 위험을 동반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위기 상황에서 부자 증세가 어떤 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경제적 파장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일회성이라는 점에서 다소 제한적이었지만, 이후에도 정치권에서는 정기적인 부자세 도입이 논의되는 등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3. 미국 내 부자 증세 논쟁과 캘리포니아, 뉴욕의 선별적 시도

미국은 연방 국가인 만큼, ‘부자 증세’ 역시 전국 단위가 아닌 주 단위에서의 도입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주가 바로 캘리포니아와 뉴욕입니다. 두 지역은 고소득자가 밀집해 있는 동시에, 진보적 정치 성향이 강해 부자 증세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는 연방 소득세 외에 주 소득세가 최고 13.3%에 달하는 고세율 지역입니다. 여기에 더해, 자산세와 자본소득세 강화, 고소득층 대상 교육세 등의 형태로 부자 증세가 지속적으로 논의돼 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수많은 기술기업 창업자와 고소득자들이 세율이 낮은 텍사스, 플로리다로 이전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실리콘밸리 일부 기업은 아예 본사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뉴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고세율에 대한 불만과 함께, 고소득층이 원격 근무를 활용해 플로리다 등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사례가 증가했고, 이는 뉴욕시의 세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부자 증세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 했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탈하는 자산층으로 인해 정책 효과가 반감된 사례로 꼽힙니다.

 

한편, 연방 차원의 부자 증세 논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자산세(Wealth Tax)’ 도입을 통한 초고액 자산가 과세를 주장하고 있지만, 법안 통과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반대뿐 아니라, 자산 평가 방식의 기술적 문제, 헌법적 논란, 자산 유출 리스크 등 현실적인 장애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에서도 부자 증세는 단순한 조세정책이 아니라, 경제 구조 전체와 고소득자의 행동 양식까지 포함하는 전략적 설계가 필요한 복잡한 영역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세율 지역에서 고소득층의 이탈은 단지 통계상의 현상이 아니라, 정책 효과 자체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세금’의 실현, 그 균형을 찾는 여정
부자 증세는 분명히 대중에게 공감을 얻기 쉬운 정책입니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복지 재정을 확충하며, 사회적 책임을 분담한다는 취지는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경우, 자산 유출, 투자 회피, 제도 회피 등 복잡한 반작용이 동반됩니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미국 등 다양한 국가들의 사례는 부자 증세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책 설계의 정교함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세금 정책 하나로 경제적 정의와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현실도 함께 드러납니다.

 

부유층의 반응은 단순한 ‘찬성-반대’로 나뉘지 않고, 정책의 방향, 이념, 실용성에 따라 다양하게 갈립니다. 증세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부자에게 더 내라’는 구호를 넘어서, 체계적인 과세 기준과 장기적 설계, 그리고 국제적 공조까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앞으로의 부자 증세 논의는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춰 나갈 것인지에 따라, 각국의 사회·경제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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