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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 문맹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계 자산이 적은 이유는?

by 가치의 지도 2025. 7. 17.

우리는 종종 ‘돈이 없어 저축을 못 한다’는 말을 들으며 가계 자산 부족의 원인을 소득 문제로만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 데이터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금융 문맹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계 자산 수준도 낮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능력, 즉 금융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것이 자산 축적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금융 문맹률과 가계 자산 사이의 연관성을 제도, 행동경제학, 사회 구조의 측면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금융 문맹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계 자산이 적은 이유는?
금융 문맹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계 자산이 적은 이유는?

 

1. 금융 이해도가 낮으면 ‘불리한 선택’을 반복한다

금융 문맹은 단순히 경제 용어나 숫자를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다 정확히는 이자, 복리, 인플레이션, 리스크 분산 등 기본적인 금융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금융 상품을 선택할 때 수수료 구조, 변동성, 장단기 수익률 등을 정확히 비교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장기적으로 불리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금과 적금밖에 모르는 사람은 주식이나 펀드, ETF, 채권과 같은 수익형 자산에 대한 접근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수익률 개념을 아는 사람은 단순히 이율이 높은 상품보다 물가 대비 자산의 실질 가치가 오를 수 있는 자산군에 투자합니다. 이런 차이는 단기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지만, 5년,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격차는 극적으로 벌어집니다.

 

또한 금융 이해도가 낮은 사람은 부채 관리 능력도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고금리 대출과 저금리 대출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리볼빙(회전 신용) 제도의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해 과도한 이자를 지불하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자산을 축적하기는커녕, 이자 비용으로 자산을 계속 유출당하는 구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 교육 수준이 낮은 국가일수록 고이율 대출 이용률이 높고, 저축률은 낮으며, 자산 불균형이 심하다고 지적합니다. 금융 문맹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품질과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문제라는 점에서 가계 자산 형성의 핵심 변수로 작용합니다.

 

2. 금융교육의 부재는 세대 간 자산 격차를 고착화시킨다

금융 문맹률이 높은 사회일수록 공통적으로 공교육에서의 금융교육 비중이 낮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인 문제로, 사회 전체가 금융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 상당수는 금융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이 부분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한국도 최근에야 중·고등학교 교육에 금융 기초 과목이 편입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교육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런 교육의 공백은 가정에서의 금융 태도 학습으로 이어지게 되며, 부모 세대가 금융에 무지한 경우 그 영향은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림됩니다. 이른바 ‘금융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금융 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세대 간 자산 불균형은 더욱 고착화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자 자산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자녀 역시 그 분야를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게 되고, 이는 결국 소득 대비 저축률은 높아도 실질 자산 증식에는 실패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금융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정보 격차의 피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접근하는 사기성 금융 상품이나, 불공정한 조건의 계약에 대해 판단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금융 사기에 노출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금융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특히 고령층과 저소득층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는 단지 자산 형성 실패를 넘어서, 기존 자산까지 잃을 수 있는 구조적 위험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금융교육의 부재는 단순히 개인의 재정적 실수를 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끊고 사회 전반의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빈곤층이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구조 속에서 금융문맹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작용합니다.

 

3. 문화적 금융 인식 차이와 국가별 정책의 영향력

금융 문맹률과 가계 자산 간의 상관관계는 단지 교육과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나라의 금융문화와 정부의 정책적 방향성 역시 이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상대적으로 금융 문맹률이 낮고, 가계 저축률이 높은 나라로 유명합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을 선호하고, 장기적으로 자산을 관리하려는 금융문화가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일부 개발도상국이나 중남미 지역에서는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거나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서, 장기 투자와 자산 관리를 회피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금융에 대한 사회적 태도 또한 매우 중요한 변수입니다. 어떤 사회는 ‘투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돈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나누는 것을 금기시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금융에 대한 대화와 정보 교류 자체가 제한되어, 개인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적 기회를 얻기 어렵습니다. 반면, 미국처럼 자본주의와 금융 시장에 대한 교육이 어릴 때부터 진행되는 나라에서는 청소년조차 주식 투자나 크라우드 펀딩 같은 금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는 곧 자산 축적의 시점을 앞당기고, 복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정책적인 측면도 중요합니다. 정부가 국민의 금융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체계적인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디지털 금융 도구를 통한 자산 관리 툴을 보급하면 그 효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호주는 국가 차원에서 ‘머니스마트’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 국민에게 무료 금융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의 금융 의사결정 수준이 상승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반대로, 금융교육이 민간 사교육에 의존하거나 일부 계층에만 집중되는 나라는 정보 불균형과 자산 양극화가 구조적으로 심화됩니다.

 

따라서 금융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가계 자산이 적은 이유는 단지 ‘못 배워서’가 아니라, 금융을 둘러싼 문화, 제도, 정책 전반이 자산 축적에 비우호적인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재무 역량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스템적 역량 부족이라는 더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계 자산의 크기는 단순히 소득이나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지식과 태도, 사회 시스템의 복합 작용 속에서 결정됩니다. 금융 문맹률이 높은 사회는 결국 기회의 사각지대를 낳고, 자산 격차를 고착화시키며, 개인의 미래 선택지를 제한하게 됩니다. 이 글이 금융교육의 중요성과 그 사회적 파급력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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